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면 성령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깨어나셨다면 치매에 걸리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성령이 깨어났다고 해서 육체적으로 온전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번영하더라도 완전한 몸을 가진 사람은 없으며, 그런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깨어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고, 깨달음을 얻어 환생하지 않고 영원한 해탈을 얻는다고 합니다.
영생과 영생은 말은 다르지만 같은 뜻입니다.
아미타불의 뜻도 “무량한 빛”이니 빛이신 성령님과 같은 말이다.
성경은 또한 성령을 빛으로 묘사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습니다(요 1:9).
그것은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더라(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더라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요 1:13).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에게 비친다고 합니다(9절).
그러나 그는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10절).
성령이 세상에 계셨고 그(하나님, 성령)께서 세상을 지으셨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더라.
또한 그(성령)는 혈통과 육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3절).
그리고 성령님은 복수형으로 표현됩니다.
성령이 한 사람만을 가리킨다면 복수형으로 쓰지 않았을 텐데, 복수형은 성령이 한 사람에게만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즉, 빛이신 성령을 알면(깨달을 때) 온 세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면 성경의 다음 말씀도 오해 없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전토를 버린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서는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로 받고 핍박을 받으나 내세에는 영생을 받지 아니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30)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시대에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전토를 박해와 함께 백배나 받을 것이요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 (마가복음 10:31)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는 자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 첫 번째.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부모와 자식과 재산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30절 말씀에 이생에서 버린 것이 백배로 되리라 하셨으니 다시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때에 백배를 받으리라)
상반된 두 내용이 진리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성령을 깨닫는 것은 육신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가 분리된 영혼의 세계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갖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관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깨달으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더 이상 부모와 자식의 개념이 필요 없게 됩니다.
영의 세계를 알게 되면 경계의 벽이 무너지고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수백 번 되돌아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나 영적 단체에 속해 있을 때 모든 사람을 부모와 형제처럼 대합니다.
그래야 형제자매가 하나님을 믿는 한 가족이 됩니다.
이것을 잘못 받아들이면 네 재산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놀부심보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되면 핍박도 당한다는 것입니다. (박해와 함께)
이것은 교회에 함께 다니면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령과 영생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고 맹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어려움과 어려움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세에 영생)
마태복음에서는 우리가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하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생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건 다르지만 같은 내용으로 보아야 합니다.
31절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생에서 성령을 깨달을 수도 있고 다음 생에서 영생을 상속받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머니의 치매 수고는 영생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성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정도에 따라 죽는 순간에 성령을 받을 수도 있고 내세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도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판단하면 자기도 비판받고 판단받는 자리에 오르고 회개하고 회개하면 심판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타나서 온전해지려면 예수도 부처도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녀온 선지자는 살아 있는 자가 없고 빛이 되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빛이신 성령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영원히 살며 숨쉬기 위해서는 성령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경은 천국이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인자의 참 뜻을 아는 자의 말을 들으라.